루몽 연합군 일본 원정군 제2차 편성

1280년 쿠빌라이는 몽골 영토였던 탐라(제주도)와 중국 남부 해안에 조선소를 설립하고 약 3,500척의 선박을 건조했다.

선박 건조가 완료되자 Kublai는 선박을 Jingyuan(현재 Ningbo)으로 운송했습니다.

같은 해 8월 쿠빌라이는 전년에 창설된 정일본도의 군수로 범문호, 흥도, 홍다구를 임명했다.

그러다가 1280년 12월 고려 충렬왕이 좌성상에 임명되고 김방경이 부사로 임명되었다.

원래 최고 사령관은 Planet Japan의 우승자 한 아치였습니다.

그러나 출발 직전 아치한이 몸이 좋지 않아 출발이 연기됐다.

그 결과 최고사령관이 급히 아타하이로 교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총사령관 교체를 둘러싼 논란은 이후 강남군이 약속한 날짜를 어기는 것으로 이어져 패배의 쓰라림을 안겼다.

원정군은 함포에서 진군하는 동로군과 양쯔강 어귀 경원에서 진군하는 강남군으로 구성됐다.

1차 원정과 마찬가지로 동로군은 헌도, 홍다구, 김방경이 지휘하고, 강남군은 범문호가 지휘했다.

고려, 몽고, 한족으로 구성된 동로군은 4만명, 패전한 남송군으로 구성된 강남군은 10만명이었다.

출발 시기는 1281년 5~6월경으로 설정되었다.

양로군 집결 시기와 장소는 6월 15일 이키섬 앞바다였다.

일본 제2 원정군의 조직과 장비는 다음과 같다.

총사령관 : 정일본행성챔피언상 아타하이동로사령관 몽한군사령관 : 정일본행성 타오원수 흥도, 정일본행성 타오원수 홍다구*15,000군 사령관 고려군 : 정일행성 도원수 김방경 * 병력 10,000 * 뱃사공, 수병 17,000 * 동로군 총 병력 42,000 * 배 900 척 * 병력 123,000 명 (돌 1개는 60kg에 해당) 사령관 강남군의 : 정일폰 행성 도원수 범문호*총병력 10만명 명*3,500척*배급량 40만

1차 원정과 마찬가지로 주력함은 발도로경줄주(상륙정), 앱소르주(음료하역선) 외에 100~300톤급 천료주였다.

따라 갔다.

강남군의 군함에는 괭이, 쟁기, 삽 등 농기구와 씨앗이 실려 있었다.

이는 일본을 점령한 후 군수품을 자체 조달하기 위한 준비조치였다.

강남군은 병력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이민자 집단이었기 때문에 주력은 자연스럽게 동로군이 됐다.

동로군의 몽고군과 한족부대는 대도에서 두 달간 행군해 4월 중순 고려 합포에 도착해 고려군에 합류했다.

여기서 말하는 한족이란 요(遼)와 금(晉)의 통치하에 있던 중국 북방의 거란족, 여진족, 혼혈 호한족을 말하며 이들이 건국한 민족이다.

한편, 남송의 항복한 병사들로 구성된 강남군은 중국 강남의 4개 성과 고려 탐라에 구축된 전열이 잇따라 경원항 일대에 집결하면서 출발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또 다른. 몽골은 강남을 점령한 지 5년 만에 10만 명을 한꺼번에 동원할 수 있는 거대한 해군력을 손에 넣었다.

물론 남송의 기반도 있었지만 몽골의 순발력과 조직력은 놀라웠다.

충렬왕은 그의 뜻에 따라 귀국 직전에 정닛판 별의 좌상으로 임명되었다.

김방경도 흥도·홍다구에 버금가는 정일본행성 도지사로 임명됐다.

동로군이 모두 합포(마산)에 집결하자 충렬왕은 흥도, 홍다구, 김방경을 따라오게 하여 전군을 진군시켰다.

이는 1차 원정에 비해 고려군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고려군의 사기는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았다.

고려인들은 몽골의 수탈로 인해 가난에 시달렸고, 특히 두 기간에 걸쳐 1,800척의 군함을 건조하면서 뿌리까지 착취당했다.

그 결과 고려 주민들의 건강과 영양상태는 극도로 악화되었고, 1279년 말에 발생한 전염병은 1281년부터 널리 퍼졌다.

강남군 10만 명의 사기는 더욱 황당했다.

그들은 힘도 쓰지 않고 몽고군에 항복한 100만 명의 남송군 중에서 가장 약한 집단이었다.

쿠빌라이 정부는 엄청난 수의 남송 항복병 가운데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갖춘 일급 병사들을 자신의 개인 경비대에 배치하거나 중앙아시아 전선에 배치했다.

2급 병사들은 광둥, 광시 등의 산악 토벌전에 파견됐고, 이후 육지 침공이 가능한 베트남과 미얀마의 최전선에 파견됐다.

강남군 병사들은 무기보다는 농기구를 주로 들고 다녔다.

그들은 일본열도 정복 이후 ‘농업이민’으로 배치될 인력이었다.

따라서 2차 일본 원정의 실제 병력은 마산에서 출항한 동로군으로 볼 수 있다.

출처: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 정순태 지음, 김영사, 2007, pp. 156-159.